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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27 00:10

    셋째날이 되었지만 아직 시차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일찍 잠이 청하지만 꼭 새벽 2-3시쯤이면 깨어 1-2시간을 뒤척거리다 겨우 잠이 듭니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 한 다음 근처의 앨 캐피탄 을 구경하러 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화강암 덩어리라는 앨 캐피탄 은 아래에서 올려보니 그냥 거대한 바위산 같습니다. 이후 글래시어 포인트 로 가는 길에 bridalveil fall 을 보러 갔습니다. 한줄기 가늘게 내려오다 안개같이 부드럽게 흩어지는 폭포줄기가 신부의 면사포라는 이름도 좋지만 원주민들이 붙인 입김의 영혼(spirit of puffing wind)이란 이름이 더 어울리는듯 합니다. 가는 물줄기때문에 그리 높아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62층 높이라고 하는군요.

    요세미티를 가장 잘 볼수 있다는 글래시어 포인트 를 향해 갑니다. 계곡 아래에서는 시작해서 걸어올라가는 4-5시간짜리 트래킹 코스가 있지만 여름, 가을철에는 도로를 이용해 자동차로도 가볼 수 있습니다. 메인 도로에서 글래시어 도로를 타고 한참을 달려야하는 곳이지만 엄청난 스케일의 절경을 볼수 있으므로 시간이 허용한다면 꼭 한번 가 보시길 권유드립니다. 수천미터 높이의 하프 돔 을 비롯한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이 요세미티 계곡 건너편에 거대한 바위 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거대함의 비현실성을 증명하듯 십미터가 넘는 나무들이 암석에 붙은 작은 솜털같이 보입니다.

    글래시어 포인트 근처에서 바라본 하프 돔과 주변의 경치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잠시 말없이 감상하고 공원 남쪽의 마리포사 그로브 를 향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관람할 수도 있지만 상점쪽에 개조한 트레일러에 올라타 관람할 수 있는 투어가 운행중이니 그것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은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투어는 특기할 만한 나무들의 이름과 사연을 설명하면서 진행되었고 숲을 발견하고 평생을 이 숲을 보전하는데 바친 Glen Clark란 사람이 살았던 오두막이었던 작은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돌아왔습니다. 잠시 내려서 나무 근처에 가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데요, 가장 덩치가 큰 그리즐리 자이언트(grizzly giant)는 수령 2700년에 남쪽의 가장 큰 가지의 직경이 2m에 달합니다.

    Glen Clark가 살았던 오두막은 지금 박물관이 되어 있다

    마리포사 그로브에서 가장 덩치가 큰 그리즐리 자이언트 나무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는 가장 오래된것도, 가장 큰것도, 밑둥이 가장 큰 나무도 아니지만 전체 체적(volume)이 가장 큰 나무라고 합니다. 80-90m의 높이에 비해 나무뿌리가 땅속 2m 깊이까지 밖에 자라지 않아 쓰러지기 쉽지만 그 외에는 벌레에도 강하고 불에도 잘 타지 않아 가끔씩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산불이 다른 식물들을 불태워 싹을 틔우고 자라는 것을 도와주나 1960년대 초까지는 이것을 잘 모르고 산불을 조기에 진화해서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산불을 조기에 진화하지 않으며 봄, 가을철에는 계획적으로 산불을 내기도 한다고 하는군요. 저희가 방문했을 때에도 한곳에서 불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에야 요세미티 공원을 빠져나와 다시 샌프란시스코 아래쪽의 해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올때는 익숙치 않은 운전에다 흐린 날씨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길가 풍경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작은 점들로 보이는 방목된 소들과 길 한편으로 계속 이어지는 아몬드 농장이 반복되는 왕복 2차선 도로를 계속 달려 쭉 뻗은 직선에 핸들을 조절할 일 없는 왕복 6차선 이상의 프리웨이에 오르자 서서히 황혼을 향해 변해가는 하늘빛과 좌우로 펼쳐진 노란빛 평원이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풍광이 미국에 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합니다.

    다시 샌프란시스코 근처로 돌아가는 길

    저녁 8시 반쯤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의 숙소는 샌프란시스코 아래쪽의 pigeon point 란 곳에 위치한 등대 옆의 유스호스텔. 예전에 등대지기들이 머물던 곳을 개조한 곳이라 부엌, 화장실과 욕실을 공용으로 함께 사용해야 하지만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카운터의 마이클이란 직원이 알려준 주변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100년이 넘은 식당에서 친절한 웨이트리스의 서빙을 받으며 늦었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게에서 직접 만든 빵과 딸기잼은 빵을 좋아하는 집사람과 저 둘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답니다.